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는 책이 많았다. 나이에 맞는 동화책이며 명작전집이 책꽂이에 한가득이었다.
재미있는 책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 것을 좋아했던 탓에 어떤 책은 삽화까지 따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보기도 했다.
그때의 내 모습과 동화작가로서의 나를 보면 ‘동화책’이라는 연결고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 신기할 때가 있다.
동화작가라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게 많지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린이 동화책을 쓸 때에는 왜 행복할까? 그건 아마도 마음껏 엉뚱해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건 신 나는 일이다. 악어가 말을 해도 되고, 집안에서 공룡을 키울 수도 있고, 달력을 흔들면 숫자들이 우수수 떨어지기도 한다.
말을 배우고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아이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아마 “왜?”일 것이다.
“엄마 저 나뭇잎은 왜 빨개?”
“단풍이 들어서 그래.”
“왜?”
왜냐니. 사실 아이들의 이야기는 거기 어디쯤에서 시작된다. 누가 간밤에 나뭇잎을 빨간색으로 다 색칠해버린 건 아닐까. 혹은 나무가 감기에 걸려서 벌겋게 열이 오른 건 아닐까.
어쩌면 아이들이 엄마에게 듣고 싶은 대답은 ‘단풍이 들어서’가 아니라 이런 기상천외한 상상 속의 대답일지도 모른다. 동화는 정답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것 속에서 등장하게 된다.
나의 첫 책, 러브장
대학 시절, 나는 문예창작학과 학생이었다. 문창과는 다른 과에 비해 과외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졸업하면 어떤 일을 할지 선명하게 그려지지도 않았다.
2학년 가을쯤, 선배들과 함께 편집 실무 스터디를 시작했다. ‘준비된 출판 실무자’가 되자는 것이 스터디를 만든 선배의 목적이었다.
스터디에서는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인데 대개 책의 가장 뒤표지에 있다.) 읽는 법, 기획안 작성법, 출판 과정, 인쇄 절차 등 편집 실무에 관한 것을 공부했다. 선배들은 졸업 후 작은 기획사에 들어가 일하고 경력을 쌓아나갔다.
졸업을 한참 앞둔 나는 본인의 이름이 실린 글을 쓰고 편집자로 일하는 선배들이 근사해 보였다. 꽤 진지하게 나의 미래는 어떨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때 출판사에서 일하던 선배가 러브장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당시 초등학생 사이에서는 공책에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 등을 적고 꾸며 교환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러브장은 바로 이런 목적으로 기획된 아이템인데 초등학생이 타깃인 상품이었다. 다른 회사에서는 러브장이 나온 적이 없었기에 나는 구체적인 기획과 구성을 혼자 해야 했다.
당시 선배가 주겠다는 원고료는 한 달 동안 과외를 하면 벌 수 있는 돈의 두 배나 되는 액수였다. 돈도 돈이었지만 책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설레었다.
우선 동네 문구점에 가서 하드커버로 된 연습장을 두 권 샀다. 초등학생의 시선으로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에게 주는 러브장과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에게 주는 러브장, 이렇게 두 권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뒤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채워 넣을 공간을 정성껏 꾸며 선배에게 가져갔다.
기획안 정도만 구성해 오리라 생각했는지 선배는 내가 내민 러브장을 보며 무척이나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해 가을 <좋아해 사랑해>라는 제목의 기획 도서가 나왔다. 직접 구성해 만든 러브장이었다. 출간 소식을 들은 친구는 나를 이끌고 교보문고로 갔다. 친구는 자신에게 필요도 없는 그 책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기꺼이 첫 독자가 되어주겠다던 그 친구 덕분이었는지, 내가 만든 책이 서점에 진열된 것을 본 그날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미니홈피의 일기장에는 그날의 설렘이 여전히 남아있다. 지금도 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그 일기를 한 번씩 읽어본다. 꿈이라는 건 그래서 신기하다.
꿈을 꾸는 순간에는 바람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감도 잡을 수 없지만 돌이켜보면 이미 지나온 길이 되어있으니 말이다.
당시 ‘이루고 싶은 꿈’의 목록에 가장 먼저 적었던 ‘내 이름이 적힌 책 한 권 내기’는 그렇게 완료된 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