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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칼럼 ③ - 최종] 느리지만 충만하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미국에서의 시간은 길었다.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졸업한 친구들은 3년 차 교사로 바쁘게 살고 있었고 한의대를 다니던 친구는 한의사가 되어있었다.

무엇이라도 이루고 돌아올 줄 알았던 딸이 대학원 합격증만 들고 와서 미국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할 때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내 심정도 무너져 내렸다.

그 한 달 동안, 고향 집에 내려가 많은 생각을 하며 지냈다. 살면서 내가 무엇인가를 목표로 삼은 뒤 놓쳐본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과 마음이 지쳤다는 생각에 몇 달간이라도 집에서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으며 쉬고 싶었지만 스물여덟이란 나이는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증을 안겨줬다.

엄마의 입에서 ‘시카고’란 단어만 나와도 눈물부터 났다. 분명 마음속의 나는 뭔가 실패하고 돌아온 사람처럼 생각했던 모양이다.

미국 대학원을 진학하기 위해 필요했던 추천서를 써준 출판사의 팀장님을 만났다. 긴 유학생활을 잘 마치고 돌아왔던 팀장님도 귀국 후 몇 년간 자신이 보냈던 타국 생활에서 겪은 이질감으로 어려웠다는 말을 했다.

나를 기다리던 슬럼프

시간이 좀 지나자 기자 생활을 했고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한 이력 덕분에 글 쓰는 일 몇 가지가 들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자신 있게 컴퓨터 앞에 앉아 써 내려가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열심히 쓰고 다시 읽어보니 엉망이었다.

미국에서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한국어로 된 책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영어로 생각하려 애썼던 탓이었을까. 

이런저런 원인을 생각해봐도 헛웃음만 나왔다. 고작 3년의 생활 때문에 그렇게 자신 있던 글이 안 써진다니 이게 말이 되나? 재촉이라도 하듯이 컴퓨터 모니터에서 커서는 자꾸만 깜빡거렸다.

결국 글을 친구에게 보낸 후 퇴고를 부탁해야 했다. 나조차 어이가 없는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명백한 슬럼프였다.

동화 원고 청탁도 들어왔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뒤지고 다른 동화를 읽어보기도 하고 내가 썼던 글을 다시 살펴보기도 했지만 원고를 첨부한 이메일을 보내는 순간까지도 혼란스러웠다.

그때 편집부에서 받은 피드백은 무참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것. 이제 동화든 뭐든 글 쓰는 일은 할 수가 없을 것만 같던 날이었다. 무슨 욕심에 미국까지 가서 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온 것일까 싶었던 후회의 시간.

우습게도 나를 좌절시킨 그 시간은 흐르면 흐를수록 약이 되었다.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의 조언대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쓸수록 문장력은 점점 나아져갔다. 그만큼 내 마음도 현실에 기대어 힘을 얻고 있었다.

도전을 만끽하기, 느리지만 충만하게

미국에서 돌아온 뒤, 1년 정도는 대학원 진학에 회의적이었다.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석•박사 과정을 밟은 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많이 듣기도 했다. 일하면서 어떤 공부를 하는 게 좋을지 마음을 정한 뒤 대학원을 진학하는 것이 좋겠다는 반응들이었다.

문예창작보다 조금 특별한 공부를 하고 싶었다. 동 대학원에 진학해서 다시 작법을 공부할 수도 있었지만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싶은 것이 바람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도 끊임없이 공부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선배들의 조언을 염두에 두고 대학원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정한 학과가 ‘영상문화학’이었다. 역사, 문화, 예술, 과학, 사회 등 다양한 학문을 바탕으로 영상매체를 연구하는 학과다.

대학원 첫 학기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공부를 하는데도 근력이 필요하다는 놀라운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모르는 것을 끊임없이 파고드는 능력. 아마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위대한 학자가 되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계속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어서 좋다. 사슬이 엮여 나가듯이 지금의 내 모습과 연결되는 다른 장르의 분야를 가늠해보고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원 전공 수업 외에 심리학과나 국어국문학과 수업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는데, 꼭 학위가 아니더라도 한평생 관심을 가져온 방면에 지식을 쌓아가기 위해서이다.

교정을 걸으며 가슴이 두근두근 거릴 때가 있다. 모두가 회사에 출근해서 정신없이 업무를 볼 이 순간에 나는 다른 방식으로 투자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아껴야 하는 것 중 일 순위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청춘에 가장 아끼는 시간을 쏟아붓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난 뒤 제법 한산해진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향할 때마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힘들고 고단했던 유학생활이 그랬듯이 그때는 알지 못한 것들이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 보면 반짝이며 빛날 때가 있다. 아마도 10년쯤 뒤 스스로 납득하고 기뻐할 만한 열매가 맺혀져 있을 거라 기대한다.

뒤늦게 공부를 왜 시작했을까라는 후회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나를 다독이며 중얼거리는 말이 있다. ‘인생은 속도전이 아니라 아이템전이다.’

매일을 만끽하며 천천히 충만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애써서 꾸역꾸역 책 한 권을 씹어 먹기보다는 한 줄씩 음미하며 전진해나가는 공부, 그리고 삶. 재촉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이는 중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 꿈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

내가 제일 처음 기획했던 책은 수학 동화로 아이들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수학 공부를 돕는 창작 동화였다. 일단 도서관에서 아동 수학교안서와 발달 과정 책 다섯 권을 빌렸다.

책을 읽으니 수학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같은 모양을 골라내는 도형에서부터 시계를 읽는 법, 공간의 좌우를 배우는 것, 개수를 더하고 나누는 것만이 수학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형과 시간, 수 세기와 패턴 등 수학 동화는 몇 가지로 분류되었고 거기에서도 1단계에서부터 3단계에 이르기까지 학습 단계가 나누어졌다.

아이가 혼자서 동화를 읽으며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매 동화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동화의 내용에 연장되는 활동을 해 볼 수 있게 팁을 쓰기도 했다. 

동화 작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엄마가 나란히 앉아서 주변에 있는 물건들로 수학 공부를 할 수 있게 돕는 역할까지 하는 셈이었다.

물가에 사는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동화를 쓸 때에는 자연 도감 책을 꺼내 이야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개구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동화였는데, 물방개를 비롯한 물속에 사는 곤충들도 재미있게 그려주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물방개며 소금쟁이가 개구리가 사는 연못에서 같은 시기에 살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도서관에 갔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그림을 그려야 하는 작가도 곤충들의 생김새를 확인해야 했다는 후문이다. 동화책을 읽을 때 아이들이 큰 의구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 확인이 꼭 필요하다.

오래전부터 아동 그림 도서들이 명작이나 위인을 제외하고는 수학, 과학 혹은 경제나 논술 등 유아들을 선행 학습하게 만드는 전집들이 많이 제작되고 있다. 

이런 동화는 학습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갖기 때문에 아이들이 마냥 이야기에 빠져서 재미를 느끼기에 부족한 경우가 많다.

책을 읽어주는 학부모들도 막상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잠들기 전 읽어주다가 엄마가 잠들어버릴 만큼 재미없을 때가 있다며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작가 중 그 누구도 읽는데 흥미롭지 않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학 동화에서 재미를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떠올랐던 것이 바로 아이들에게 익숙한 이야기 다시 쓰기이다. 피터 팬과 같이 아이들이 친숙해하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식이다.

어느 날 웬디가 후크 선장에게 납치를 당한다. 그러나 이게 웬일일까. 후크 선장은 웬디에게 자신들의 엄마가 되어 달라며 고개를 숙인다. 웬디는 피터팬이 자신을 구하러 올 때까지 시간을 벌 심산으로 자신은 청소를 잘하는 아이들이 좋다며 해적선 청소를 시키는 이야기이다.

이때 동화에 들어가야 할 학습목표는 복합 패턴이었다. 소시지를 길고 굵은 것부터 가늘고 짧은 것 순으로 정리하는 선원들을 보여주면서 청소와 같은 일상 활동 속에서 복합 패턴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가르칠 수 있었다.

동화를 쓰면서 나조차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기도 했는데 시계를 읽는 방법이 그중 하나였다. 1시 25분을 말할 때 시간은 하나, 둘, 셋과 같은 기수로 말하지만 분을 읽을 때는 일, 이, 삼과 같은 서수로 말한다는 사실이었다.

시계를 보는데 익숙해진 나로서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동화 속에서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분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떠올린 아이디어가 바로 숫자 아래에 동물들을 그려 넣는 일이었다.

‘숫자 3 아래에는 토끼가 세 마리 있으니까, 3시군요’가 내가 얻은 해답이었다. 동화를 쓴다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고민과 연구가 필요한 일임이 틀림없다.

동화책을 읽어보면 작가의 성격이 나타난다는 말을 듣는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작가의 동화에는 늘 잔잔한 감동이 있고 꾸미는 걸 좋아하는 작가의 동화에는 주인공이 늘 공주로 등장하는 식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 동화를 몇 권 꺼내 읽어보니 모든 주인공들이 다 모험을 떠난다. 아마도 밖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것을 보고 낯선 곳으로 떠나기를 좋아하는 내 성격이 드러나는 모양이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다른 부분에서 즐거워하고 깔깔대며 웃기 때문에 일부러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챙겨보기도 한다. 아이들 사이에도 유행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유치원 선생님들이나 학부모들을 일부러 만나서 트렌드를 듣기도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역시나 어린이 완구코너나 도서 코너에 가는 것이다. 아이들이 왜 이 캐릭터를 좋아하는지를 생각해보고 그 이유를 메모해두는 편이다.

어린이 그림책을 살피고 내가 쓰고 있는 동화와 꼭 어울릴만한 그림이 있으면 작가의 이름을 외어온 후 편집자에게 전달한다. 아이들의 그림 동화책에서 그림은 때로 내용보다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늘 모험을 떠나는 캐릭터가 슬픈 표정을 짓는 주인공을 주로 그리는 작가에게 맡겨진다면 글과 그림의 궁합이 맞는 책이 되기 힘들 것이다. 동화책을 쓰는 작가라면 자기의 글과 잘 맞는 작가는 누가있는지 고민해둘 필요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동화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다. 주변 친구들에게 어떻게 하면 동화작가가 될 수 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처럼 출판사와 인연이 되어 작가가 되는 방법도 있지만 주로는 공모전에 당선되어 이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매년 말 열리는 신문사의 신춘문예도 있지만 메이저급 출판사나 전통 있는 동화 공모전이 유명하다. 문예창작과 학생들은 선후배들과 함께 분과를 만들어 서로의 작품을 합평하고 공모를 준비하기도 한다.

주요 포털 사이트에는 동화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만든 카페가 있어 그곳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스터디 그룹을 꾸려서 공모전을 준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제대로 동화 쓰기를 배우고 싶다면 문화센터의 동화작가 워크숍과 같은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선에서 동화를 쓰는 유명 동화작가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그분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조언을 들을 수도 있다.

드라마 쓰기와 시나리오 쓰기가 겉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 보면 전혀 다른 글쓰기인 것처럼, 동화가 아닌 다른 장르를 써 온 사람이라면 시간을 내 동화 작법을 배워두는 것을 권한다.

아이를 대상으로 한 글이라 쉬운 문장으로 의태어, 의성어를 많이 넣으면 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집중하는 시간이 길지 않은 아이들의 흥미를 계속 이끌면서 짧은 글 안에 써야 하기 때문이다.

동화 일러스트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이라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각 출판사 편집장에게 메일을 보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대부분의 편집장들은 마음에 꼭 드는 그림 작가를 찾으려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이 분야의 일도 엉킨 실타래를 풀듯이 시작은 어렵지만 막상 들어서면 기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동화 작가로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나는 드라마 대본을 쓰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동화가 되었든 드라마가 되었든 글쓰기의 첫걸음은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때 만난 친구는 ‘소통을 위한 노력’이라고도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말로 나오지 않아서 글을 쓴다는 것이다.

좋은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여행도 다니고, 그곳의 문화를 습득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려 노력하지만 내 생각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시인 정현종의 시가 광화문 교보문고에 걸린 적이 있었다. 그 건너편에 서서 아주 오랫동안 멍하니 그 글귀를 바라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두 명과 만났다면 두 개의 캐릭터를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만들어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를 만난 셈이다. 

방안에 갇혀서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캐릭터를 하나 둘 만들어가는 것보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일은 더 유쾌하고 즐거운 창작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게 아닐까. 능력 있는 동화책 편집 기획자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진짜 좋은 동화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재미있는 캐릭터와 흥미진진한 이야기 그리고 짠한 감동이 있는 작품인 것 같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동화에는 감동이 없단 이야기구나!’라는 생각에 언짢았지만 집에 와서는 오히려 그의 말에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동화작가 김해린 칼럼

삶의 희로애락을 다 겪어보지 못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감동이라는 게 뭘까. 기르던 강아지와 헤어져야만 하는 슬픔, 동생이 태어나 엄마를 양보해야 하는 분노, 좋아하는 아이와 짝이 되었을 때의 기쁨과 행복. 어쩌면 아이들은 매 순간을 온전히 느끼며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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