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4차산업혁명’이란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후 전 세계 전문가들은 우리 시대가 4차산업혁명에 접어들었다는 의견부터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등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러나 각기 다른 주장을 제쳐놓더라도 인류가 나아가야 할 변화의 방향으로 4차산업혁명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4차산업혁명의 대표적 신봉자인 클라우스 슈밥은 “4차산업혁명의 새로운 기술들로 전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며 “이를 통해 모든 국가의 산업과 사회가 큰 충격에 빠질 정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커다란 변화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수긍하지 못하는 이들은 4차산업혁명이 실체가 없다고 말한다. 과장된 마케팅 용어에 불과하다는 혹평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은 정보혁명, 지식혁명을 의미하는 3차산업혁명조차 학계에서는 학술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노스웨스턴대 로버트 고든 석좌교수는 “4차산업혁명은 3차산업혁명의 연장선일 뿐”이라며 “4차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여겨지는 인공지능, 로봇은 오래 전부터 등장한 기술이며 격동적인 변화가 아닌 완만한 변화라 4차산업혁명이라 내세울 만한 게 없다”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산업혁명의 실체와 타당성은 학술적으로 어떻게 구분되는가? 기존 산업혁명을 구분하는 잣대는 산업혁명을 이끄는 새로운 핵심 기술의 존재유무부터 신기술로 인한 기존 산업의 대폭적인 변화, 산업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으로도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느냐다.
그런 학술적 기준으로 바라봤을 때 대다수 전문가들은 지금 시대가 4차산업혁명에 진입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입을 모은다. 핵심 기술로 꼽히는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은 과거와 달리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여기에 빅데이터의 활용 기술은 실생활과 맞물려 스마트폰에서 큰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기존의 흐름과 확연히 다른 수준이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 시대를 수긍하는 모습과 다르게 정작 우리 사회는 노동 적정 연령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평균수명의 연장은 필연적인 수순임을 인정한다면 정년에 대한 인식의 폭도 확대돼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육체보다 지식 노동이 우선한다. 고령층이 한평생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생산적인 지식 노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출산율 저조로 인해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감소를 피할 수 없는 처지다. 고령층을 잘 활용해야만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고령층의 근로 참여가 확대될수록 정부도 조세 지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고 현 정부의 핵심 목표 중에 하나인 고용 유연성 달성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미국은 연령에 따른 고용차별 금지 차원에 정년을 따로 두지 않는다. 근로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정년을 정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늙어서도 일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은 제외다.
최근 법원이 노동으로 소득을 내는 한계 연령을 말하는 ‘가동연한’에 대해 65세로 기존의 통념을 깨뜨렸다. 1989년 60세로 조정한 이후 바뀌지 않은 가동연한에 대해 대법원의 판결만 남은 셈이다.
미켈란젤로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만든 ‘최후의 심판’은 66세에 완성됐다. 그 시대의 평균수명을 고려한다면 대단한 업적이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그의 저서 ‘백년을 살아보니’에서 자신의 황금기로 볼 수 있는 시기가 60세부터 75세였다고 한다. 올해 99세인 김 교수는 지금도 종횡무진하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중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평생의 업을 국가 경쟁력으로 돌리려는 발상의 전환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