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4일부터 반도체를 비롯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의 핵심 소재로 사용되는 3개 소재에 대해 한국 수출 사전허가제에 들어간 가운데 단순히 한국 기업의 피해로 끝나지 않고 미국 주요 ICT 기업의 제품 생산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련 업계의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3개 소재는 ‘포토레지스트’(PR·감광액), ‘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폴리이미드’입니다. 이전에는 사전허가제를 받지 않고 사전 심의 없이 수출이 가능했으나 이제는 일본 정부가 필요에 따라 수출을 제한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전 심의를 받기 위해선 석 달 정도 기간이 소요됩니다. 반도체 물량을 대량으로 쏟아내야 할 때는 제조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행히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높지 않은 냉각기에 접어들어 당장의 큰 타격은 없지만 장기화 될 경우 심각한 피해가 초래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국내 주요 업체들이 보유한 3개 핵심 소재는 1~2개월 정도 분량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미국 트럼프 행정부까지 움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애플의 경우 아이폰에 사용되는 올레드 패널 물량 대부분을 삼성디스플레이에 조달받고 있습니다. 애플은 9월 중 신모델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만약 삼성디스플레이가 물량 생산에 타격을 입는다면 신모델 대량 생산도 타격을 받게 됩니다.
IHS마킷에 따르면 올 1분기 스마트폰용 올레드 시장에서 삼성디스플레이 점유율은 86.5%의 막강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상 대체할 업체가 없다는 시장 독식 구조입니다.
또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문제가 생긴다면 미국의 시스템반도체 업체인 퀄컴과 엔비디아도 고스란히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들 업체는 반도체 설계에만 나서는 팹리스를 맡고 제조는 삼성전자가 담당하는 식으로 협업 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더욱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세계 시장에서 조달하는 물량과 점유율을 감안했을 때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시세까지 출렁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IHS마킷에 따르면 올 1분기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 40.6%, SK하이닉스 29.8%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두 업체가 7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어 D램 시장을 혼돈으로 몰고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구글과 아마존 등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기업들도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미국 ICT 산업에 악재가 이어진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미국 정부에 저자세 외교를 지속하고 있는 아베 신조 총리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감안할 때 아베 총리의 경제 보복은 공포탄 수준에서 끝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설령 보복을 길게 가더라도 미국 기업들까지 악영향을 받는 수준까지 미치진 않을 것이란 견해도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이 미국과 암묵적으로 일정 기간 한국 때리기에 동조할 가능성도 있다”며 “우리 정부가 전면전을 펼치겠다고 강력하게 나왔지만 솔직히 경량급과 중량급의 싸움일 정도로 경제적 인프라와 원천 기술 보유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럴 때일수록 외교적 접근으로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며 “정부 역량이 중요한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