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C뉴스┃CBCNEWS = 김민철 기자] 시계를 계속 과거를 향해 돌려보자. 시침을 돌려보면 그동안 국제정세가 시시각각 변해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양극화가 다극화 됐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러시아의 양극체제가 엷어지면서 세계는 점점 다극화되고 있는 과정에 있다. 양극화 시대의 논리는 제로섬이며 냉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다극화된 세계는 미 러 중 일 유럽 등이 대등한 힘의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극화된 세계에서는 강대국들의 입김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군사적인 면에서 미국과 러시아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지만 강대국들의 영향력은 복잡한 이해관계에 따라 축소 조정되어 가는 중이다.
결국 명분 못지않게 상호실리가 국가이익의 상위개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대결보다는 조정이 , 군사보다는 경제, 개입보다는 자제를 중시하는 쪽으로 외교개념도 바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한반도에 대입시켜보면 미국은 여전히 한국에 대한 시각이 닉슨독트린 이전에 머무르는 듯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경제보다는 군사를 조정보다는 대결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는듯하다.
일본에 대한 최근의 미국의 발언이나 태도를 보면 양극화가 이완되고 다극화가 전개된다는 점을 무시하는 전략으로 일관하는 느낌이 든다.
미국의 지소미아에 대한 발언은 간접적인 일본 편들기에 다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독도방위 훈련에 대한 미국의 발언은 사려깊지 못한 느낌마저 준다. 내 땅에서 내가 하는 훈련마저도 비판하는 것은 동맹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립서비스 마저도 사라진 미국의 전략은 그리 현명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약소국가이 때문에 혹은 종속변수이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있다는 개념이 이러한 발언의 배경이라면 판단 미스라고 할 수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이점에 대해서 매우 불공정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현재 사안들에 대해서 미국은 심판을 자처하지만 그다지 공정하지 않은 심판 같다고 할 수 있다.
VR로 판독할 기회가 주어지거나 챌린지가 주어지면 다시 판정이 번복될 여지가 있는 판정들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의 한국의 상황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압박카드를 더욱 강화하려하는 개념이라면 성공을 거두기는 더욱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단군 이래 한국이 당한 침략이 거의 천번에 이르는데 거의 다 일본이라는 것을 미국은 유념해야 한다.
한일관계 문제를 미국이 ‘권고’해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태인들에게 아우슈비츠를 용서하라는 말과 다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제대로 심판을 보든지 아니면 빠지든지 하라는 촉구를 하고 있다.
심판이 선수로 뛰는 형국은 인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둘러싸인 한반도의 상황을 ‘고립무원’이나 ‘사면초가’로 해석하는 것 같다.
미국만이 유일한 파트너이며 구렁에 빠진 한국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든든한 동아밧줄이라고 자처하는 듯 하다. 미국은 현재의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부족한듯하다.
위기에 빠진 한국에 대해서 미국은 거칠고 너무 솔직한 태도로 본심을 숨기고 있지 않다. 일본과 미국은 거의 같은 태도로 일관하는 것 같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미국의 일본의 일치된 논의들을 보면서 미국에 대해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수 있었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국제사회의 냉정한 상황을 직시했다는 것이다.
수출규제로 인해 이미 한국인들에게 일본은 적일수도 있다는 가능성에서 적이구나라는 패러다임을 절감했다. 미국에 대해서도 피를 나눈 형제이며 맹방이라고 생각했는데 중립성을 잃은 태도는 엔분의일의 파트너라는 점을 느끼게 했다.
많은 한국사람들은 미국 역시 혈맹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일본의 후순위이며 종속변수이구나를 느끼게 했다. 미국의 관심과 전략적 중요성은 일본의 비중이 더 크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
위기를 즐기는 듯한 이웃들의 태도를 알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영공을 침범하기도 했다. 북한은 미사일을 쏘며 막말을 퍼부었다.
일본과 미국 북한 중국 러시아 열강들이 다르지 않았다.
백여년전 역사를 되돌아 본다면 일본과 미국이 어떻게 테이블에 앉았으며 어떻게 지도에 선을 그었나를 상상하게 해줬다.
미스터션샤인에서 이병헌이 보여준 호의는 차라리 논픽션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정말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 것이다.
[진행┃씨비씨뉴스 = 권오성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