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CNEWSㅣ씨비씨뉴스] "저는 시민이 되고 싶어요" 이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습니다.
1960년대 이승복 어린이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했다고 해서 살해당했다고 배웠습니다.
물론 이의 진실 여부를 두고 논란은 있습니다.
1959년 생이니까 그는 살았으면 이제 돼지띠로 61세입니다. 학업성적이 양호하고 활달 대범한 소년인 이승복 어린이는 정확하게 1968년 12월9일 희생됐습니다.
9세의 어린아이를 미워요도 아니고 “싫어요” 라고 해서 죽인 집단은 증오의 대상이 되었고 희생당한 이승복 어린이는 반공시절의 기념비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승복 어린이 일화를 이렇게 장황하게 쓰는 이유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하는 이승복 어린이가 새삼 존경스러워 져서입니다.
이승복 어린이에 비유할 수 없지만 "저는 시민이 되고 싶어요". 라는 말도 하기가 두려운 게 요즘 현실입니다. 그를 추모하는 시에서 "자유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큰 희망을 가슴 가득 안고 있었습니다"라고 읊조리고 있습니다.
공익적인 고민 끝에 나선 시민들이 있는 사회가 건강하고 건전하다고 생각하는 위정자는 없는듯 합니다.
아전인수 격으로 편가르기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시민이라는 말이 정당한 행사를 해야 건전한 사회입니다.
언로를 두려워하여 분서갱유를 행한 진시황은 결국 망했습니다.
자신을 비판하는 대상이 싫기만 하고, 남의 충고를 들을 귀가 없는 자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원하는 틀만 벗어나면 용서하질 못합니다.
어찌 자신의 귀에 감미로운 소리만 들으려고 하는지 그건 욕심입니다. 좋은 약이 쓰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민들이 말을 했다면 들어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 나름대로 잣대로 잰 사회에 대한 척도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국민에 대한 존경심을 갖는다면 현재 난마처럼 엉켜있는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굳이 존경까지 갈 것 없습니다. 국민을 시민처럼 대하면 됩니다. 광화문에서 서초동에서 시민들은 나름대로 방식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이념을 위해 목소리를 냈습니다.
진지하게 이를 접수해야 하지만 정치권은 아직 이를 접수할 그릇을 준비 못한듯 합니다.
청포도가 익어가지만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야경국가의 신민이나 농노가 아닙니다. 계몽시대가 아닌 집단지성으로 받드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국민이 주권을 가진 시대에 맞는 정치를 펴야 합니다.
[진행ㅣCBC뉴스 = 권오성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