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CNEWSㅣ씨비씨뉴스] #1. 지난달 25일 서울고법 형사1부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1993년 프랑크프루트 선언을 언급하며 이 부회장도 과감한 혁신에 나서달라는 이례적 당부를 전했습니다.
#2. 정 부장판사는 “심리 기간에 우리나라 대표 기업 총수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주길 바란다”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책임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본 심리에 임해달라”고 운을 뗐습니다.
#3. 그러면서 “재판 진행이나 결과와 전혀 무관함을 분명히 해두고 몇 가지 사항을 덧붙인다”며 “이 사건의 수사와 재판을 위해 많은 국가적 자원이 투입됐고 위법행위가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국민적 열망도 크다”고 말을 이었습니다.
#4. 또한 “몇 가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삼성은 다시 이번 사건과 같은 문제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며 “삼성에서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적 준법 감시제도가 작동됐다면 법정에 앉아있는 피고들은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최서원 씨도 이러한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5. 이어 “기업 내부의 실효적 준법 감시제도는 하급 기관의 비리만 방지하는 것이 아닌 고위 임원과 기업 총수의 비리 행위도 방지할 수 있는 철저한 것이어야 한다”며 미국 연방법원의 양형기준인 제8장과 해당 법을 지키기 위한 미국 대기업들의 준법 감시제도를 참고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6. 특히 정 부장판사는 지난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포’를 언급하며 이 부회장에게 과제를 던졌습니다. 그는 “여러 도전에 직면해있는 이 엄중한 시기에 대한민국 대표 기업 삼성의 총수는 재벌 체재로 인한 폐해를 바로잡고 혁신 경제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7. 정 부장판사는 “51세의 이건희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모두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는 신경영을 선포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며 “2019년 똑같이 51세인 이재용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어야 하나”라며 심리를 끝마쳤습니다.
#8.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일종의 강연이었습니다. 핵심 경영진 200여명을 대상으로 4회에 걸쳐 실시한 강연입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에쉬본의 삼성유럽총본부에서부터 시작하면서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이름이 붙여집니다. 특히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는 이건희 회장의 말이 유명세를 치렀습니다.
#9. 당시 프랑크푸르트 강연은 10시간을 훌쩍 넘을 정도로 이건희 회장의 절박함을 반영했습니다. 삼성그룹은 강연 내용을 모든 사업장에 공유했고 해당 내용은 언론은 물론 산업계의 이슈로 등장했습니다.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바꾼 원동력이자 한국 기업문화의 전환점을 제시할 정도로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입니다.
#10. 이건희 회장은 당시 강연에서 “15만 명 삼성그룹 가족이 제각각 움직이면 배는 제자리에서 뱅뱅 돌게 되나 한 방향으로 나가면 속도는 15만 배나 빨라진다”며 “삼성가족들 누구나 나름 고민하고 고생하지만 저마다 제각각이다보니 악순환이 거듭되고 모두 손해를 보는 뱅뱅 도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11. 이어 “전자는 40만평에서 3만4000명이 일하지만 이익은 400~5000억 원에 불과하고 반도체는 10만평에서 1만명이 5000~6000억 원의 순익을 내고 있다”며 “세계에서 일류가 되면 이익이 3~5배까지 늘어난다는 것은 반도체 메모리 분야가 입증한 것처럼 삼성그룹은 대대적인 변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12. 삼성그룹은 이후 신경영 선언을 구체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벤치마킹에 들어갑니다. 당시 글로벌 전자 시장을 호령한 일본의 소니를 비롯해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이 벤치마킹 대상이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의 장점을 철저히 배워 이를 삼성만의 장점으로 승화시키자는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13. 신경영 선언 당시 삼성전자는 일본의 전자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을 지상최대 목표로 삼았습니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243조7700억 원, 영업이익은 58조8900억 원입니다. 이는 일본 전자업계 상위 10위 기업의 매출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신경영 선포 이후 25년 만에 아시아 최고의 전자기업으로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14. 사실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반도체의 경우 지난 1983년 한참 늦은 출발이었습니다. 미국과 일본에 비해 20여년이나 출발이 늦었고 당시 반도체 사업에 시장 반응은 매우 회의적이었습니다. 특히 선진국형 고부가가치 창출 사업인 D램 분야는 인구 1억 명 이상에 GNP 1만 달러 이상, 국내 소비 50% 이상이 뒷받침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15. 그러나 반도체 사업 진출 선언을 한 1983년 그해, 국내 최초 64K D램 개발을 성공하면서 기술 격차를 단숨에 좁혀나갑니다. 이후 64K D램 호황기가 끝날 줄 알았다는 듯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합니다. 1994년에는 256MD램, 1996년에는 1GB D램을 내놓으면서 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차곡차곡 쌓아가게 됩니다.
#16. 철저한 벤치마킹과 과감한 실행력은 현재 반도체 제국 삼성전자를 만들었습니다. 글로벌 시장의 1등 주자가 된 삼성전자의 지금은 리더의 위기의식과 결단이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7. 2019년, 세상은 더욱 빠르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5G,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블록체인 등 새로운 기술의 융합이 떠오르는 4차산업혁명 시대입니다. 삼성전자는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고자 AI, 5G 등에 대단위 투자를 단행하는 중입니다. 글로벌 기술 패권이 국가경쟁력 이어지는 시대에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에게 당부를 건넨 것은 일종의 애국심이라 볼 수 있을까요?
[진행ㅣCBC뉴스 = 권오성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