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 KBS [반응이 센 CBC뉴스ㅣCBCNEWS]](/news/photo/202204/426665_231241_5215.jpg)
[CBC뉴스] 지천으로 꽃이 만발하는 시기, 봄. 하지만 그 설렘을 느끼기도 전에 만개한 꽃들은 금세 지고 말아, 사계절 중 가장 아쉬운 마음이 드는 계절이기도 하다. 꽃 피기 시작하면, 산에서 강에 이르기까지 형형색색의 산물들도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얼어있던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맛있는 밥상과 함께 짧지만 가슴 두근거리는 봄나들이를 떠나본다.
■ 구례 산수유꽃 필 무렵, 화전놀이를 떠나다 – 전통농업 발연법
봄이면 마을 전체를 노랗게 물들인다는 산수유나무. 전국 산수유나무의 70%가 모여있다는 구례 산동면 정산마을에는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 농법이 있다. 발연법(發煙法)이 바로 그것이다. 서리가 내리는 시기에 자주 연기를 피워 냉해 피해를 막았다는 이 농법은 2014년 6월,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도 지정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돈나무, 대학나무로 불릴 만큼 한 그루, 한 그루가 중요했던 산수유나무는 마을 사람들이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딱딱한 껍질 속에 씨를 품고 있는 산수유 열매는 마을 사람들에게 커다란 일거리가 되기도 했다. 기계 하나 없던 시절에는 학교 마치고 온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방에 둥글게 모여앉아 이로 열매를 깨서 씨를 발라냈단다. 그래서인지 산동면 사람들은 늘 입술이 붉게 물들어 있고, 이가 닳아있었다. 산수유가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은 것도 약효가 있었던 터, 밤마다 이불에 오줌을 싸는 아이들에게 산수유 열매와 소고기를 함께 삶은 ‘산수유수육’을 먹여주면 병이 씻은 듯 나았단다. 산수유 꽃이 만개하던 시기에 들에서는 쑥도 함께 났다.
먹을 게 없던 시절, 이 쑥을 캐 밀가루와 함께 조물조물 버무리면 봄의 맛 ‘쑥버무리’ 완성.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단 하루 즐길 수 있었던 화전놀이에는 ‘산수유막걸리’와 ‘산수유화전’이 동행했다. 그중 별미는 바로 ‘미나리오징어무침’. 내륙 특성상 바다에서 나온 산물을 맛볼 수 없었던 그 옛날, 화전놀이를 하는 이날 하루만큼은 여수에서 오징어를 공수해와 봄 미나리와 함께 무쳐냈다. 얼마나 그 맛이 시름을 잊게 했던지, 매년 화전놀이에 ‘미나리오징어무침’은 빠질 수 없는 필수 반찬이 되었다.
고단했던 삶의 흔적이 깃들어있는 산수유 전통농업과 함께 인생의 봄날을 만끽하는 구례 산동면 정산마을 사람들의 밥상을 만나본다.
■ 지심도의 마음을 담은 동백꽃과 반대잡이
경남 거제시 일운면에는 마음 ‘심’자를 닮았다 해서 ‘지심도’라는 이름이 붙여진 섬이 있다. 배 한 척 댈 곳 없는 이 섬에서 낚시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던 ‘반대잡이’. 지심도에 유독 많았던 대나무를 깎아 뜰채를 만들어 고기를 뜨는 옛 방식이다. 26년 전, 우연히 놀러 왔다가 지심도의 풍경에 반해 살기 시작했다는 조동일, 이경자 부부 역시 이 방식을 지심도 어르신들께 배웠다.
섬 전체의 80%가 동백나무로 뒤덮여있어 동백섬이라고도 불린다는 지심도에는 가는 길마다 동백꽃이 떨어져 있다. 이경자 씨는 이 동백꽃이 지고 난 후 열리는 동백 씨로 동백기름을 만들었다. 동백섬의 따스한 바람을 맞고 자라난 참나물, 구기자 순, 방풍나물에 이 동백기름을 곁들이면 고소한 ‘동백기름나물무침’이 완성된다. 동백기름 한 숟갈이면 기침 예방에도 좋단다. 갓 뽑아낸 두릅은 생으로 먹어도 맛있지만 이 동백기름에 둘러 ‘동백기름두릅전’으로 구워내면 향과 맛이 배가 된다. 여기에 조동일 씨가 반대잡이로 잡아 온 전갱이가 빠질 수 없다. 제철 전갱이에 비린내 잡아주는 제피를 얹은 ‘제피전갱이물회’와 방풍나물이 듬뿍 들어가 칼칼한 양념장의 맛을 중화시켜주는 ‘전갱이나물조림’까지. 조동일, 이경자 부부는 동백꽃이 만발한 지심도의 마음을 품고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 낙화담 들꽃 밥상 – 어디서든 꿋꿋하게 피어난다
칠곡군 지천면의 ‘낙화담’에는 전설이 깃들어있다. 임진왜란 때 마을 여인들이 자신을 지키고자 몸을 던졌다는 못. 그 절벽에서 떨어지는 여인들의 모습이 마치 꽃잎 같다고 하여 ‘낙화담(落花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그 전설을 품은 낙화담 옆에 들꽃들이 가득 피었다. 귀향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는 손제순, 이태보 부부는 집 앞마당에서 약 4백여 가지에 이르는 야생화를 가꾸고 있다. 어릴 적 설탕 대신 먹곤 했다는 골담초부터 미스킴라일락, 자주괴불주머니, 바람꽃, 앵두나무꽃까지. 갖가지 야생화들이 마당에 피어나면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봄이 되면 모든 야생화가 먹거리가 된다. 산에서 뜯어온 고사리에 진달래꽃과 골담초를 넣고 달래 간장을 버무리면 눈으로 한 번, 입으로 한 번 먹는다는 야생화 비빔밥이 만들어진다. 어떤 꽃을 어떻게 만들어 먹어야 맛있는지 눈에 선하다는 손제순 씨. 꽃망울이 큰 머위꽃 종류는 ‘야생꽃튀김’으로, 꽃망울이 작은 종류는 화전으로 만든다. 야생화에 이어 부부가 들고 온 것은 바로 풋참외. 참외로 유명한 칠곡에서 별미로 먹곤 한다는 ‘참외장아찌’는 잘게 썰어 비빔국수 위에 올려 먹어도 일품. 본격적인 더위가 오기 전, 꽃 얼음 동동 띄워낸 냉국에 참외장아찌를 곁들여 ‘야생화참외장아찌냉국’을 해 먹기도 한다.
봄이면 제 품을 다 내어주는 야생화처럼 푸근한 마음을 가진 부부의 눈과 입이 즐거운 밥상을 만난다.
■ 벚꽃과 함께 시작되는 하동 재첩잡이 – 손틀어업을 아시나요?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 섬진강의 봄은 분주하다. 바로 벚꽃과 함께 재첩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예부터 하동에서는 ‘거랭이’라는 도구를 바닥에 긁어 재첩을 캐내던 ‘손틀어업’이 전해져 내려왔다. 손틀어업으로 재첩을 잡은 지 50년이 넘었다는 안상철 씨는 매일 아들 안준안 씨와 함께 섬진강으로 간다. 안준안 씨 역시 아버지를 따라 손틀어업을 시작한 지 8년째지만 커다란 ‘거랭이’를 질질 끌고 뒤로 가는 작업은 여전히 힘이 든다. 이 고생을 해봤으니 아버지 안상철 씨는 아들 안준안 씨에게 손틀어업을 가르쳐주기 싫었을 터. 제대로 된 방법 하나 모른 채 안준안 씨는 그저 아버지가 하는 모습을 등 너머로 보고 배웠다. 자갈과 생김새가 비슷해 재첩 대신 자갈을 잡아 왔을 때 많이 혼이 나기도 했지만 이제는 잡는 솜씨가 제법이다.
맑은 섬진강 따라 피어난 재첩은 푹 삶고 난 후에 조리를 시작한다. 봄에 나는 재첩은 내장이 잘 보이지 않아 씹는 식감이 좋다는데. 뽀얗게 우려낸 국물에 별다른 재료 없이 재첩만 넣은 ‘재첩국’이 그 식감을 대변한다. 재첩을 삶고 난 물은 버리지 않고 밀가루에 개어 ‘재첩전’으로 부쳐내면 허기를 달래기에 제격. 무와 사과를 길게 썰고 재첩과 함께 초장에 버무린 ‘재첩초무침’ 역시 달큰한 맛이 일품이다. 재첩 따라 피어난 벚꽃을 보면 절로 옛 생각이 난다는 어머니 이경남 씨. 벚꽃 피고 지는 게 세월처럼 빨라서, 젊은 시절 일만 하느라 보냈던 시절엔 벚꽃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했단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안상철 씨와 안준안 씨 부자가 벚꽃 구경을 나왔다. 고단했던 지난날을 잊으라는 듯 세 사람을 응원하는 꽃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배우 최불암이 진행하는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40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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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C뉴스ㅣCBCNEWS 박은철 기자 press@cbc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