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C뉴스] 전라남도 남단 중앙부에 있는 보성군은 예로부터 산, 바다, 호수가 잘 어우러진 ‘3경’과 ‘의향(義鄕)’, ‘예향(藝鄕)’, ‘다향(茶鄕)’을 갖춘 ‘3보향’의 고장으로 불린다. 특히 ‘판소리의 본향’으로 보성소리가 정립된 이곳에는 500m 내외의 산줄기 굽이굽이 소리의 물결이 흐른다. 보성군에서 가장 높은 산인 제암산은 예로부터 백성들이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국태민안을 빌던 곳으로 철쭉이 만연했던 능선에는 억새 군락이 자리 잡고 있다. 인생의 희로애락과 우리 소리의 혼을 품은 보성 제암산으로 국악인 김병혜 씨가 향한다.
김병혜 명창은 보성소리 심청가 이수자로 이번 여정은 그의 스승인 (故)성창순 명창의 흔적과 우리 소리의 길을 따라간다. 서편제 보성소리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보성 판소리성지와 소리꾼들이 목을 틔우기 위해 공부했던 득음정을 지나 본격적으로 제암산 산행에 나선다. 제암산자연휴양림 내에 조성된 ‘더늠길’을 따라 서서히 몸을 풀며 올라서는 길. 명창이 평생 다듬어낸 자신만의 독특한 가락이나 특징을 일컫는 순우리말 ‘더늠’에서 이름을 따온 숲길은 어느새 성글어져 초겨울의 담백한 멋을 드러낸다.
남녀노소 누구나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 평탄한 데크 길을 따라 곰재로 방향을 잡는다. 흙길을 조금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낙엽을 밟는 소리와 거칠어진 숨소리만이 가득한 여정을 응원하듯 나무들 사이로 유려한 산줄기와 눈부신 바다가 언뜻 얼굴을 비추며 손짓한다. 마침내 곰재를 지나 제암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오르면 보성을 비롯한 전라남도 일대의 명산들이 한 폭의 산수화를 그리고 득량만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저 바다로 향해 갔을 심청이의 애틋한 심정이 가락을 타고 멀리멀리 퍼져나간다.
지난날 우아하게 꽃을 피웠던 억새가 초겨울 바람에 몸을 누이며 길을 안내한다. 내내 유순하게 흐르던 능선 길이 오르내림을 반복하더니 순간 암릉지대로 돌변한다.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걸음을 내딛으면 이윽고 정상인 임금바위 아래에 닿는다. 바위의 형상이 ‘임금 제(帝)’자 혹은 임금이 쓰던 익선관을 닮았다 하여 임금바위라 불렀다는 설도 전해지고 바위를 향해서 주변의 바위들이 절을 하고 있는 모양이라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임금바위를 올라서는 길은 제암산 산행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 마침내, 제암산 정상에 오르면 산과 바다가 그리는 시원한 절경 앞에서 그 고통을 모두 잊게 된다.
북으로는 월출산과 무등산이 손에 잡힐 듯이 자리하고, 남쪽으로 천관산과 남해 바다 일원이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일림산 너머 보성과 순천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수려하다. 발아래엔 제암산 큼직한 골짜기와 그 골마다 품은 물길이 굽이굽이 흘러간다. 고요한 바다와 웅장한 산등성이가 명창의 노랫가락과 어우러져 하나의 평화로운 풍경이 된다. 소리의 고장에 우뚝 솟은 제암산을 ‘영상앨범 산’에서 함께 만나본다. 12일 오전 7시 10분 KBS 2TV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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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C뉴스ㅣCBCNEWS 박은철 기자 press@cbc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