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이동통신 3사의 5G 장비업체 선정 작업이 초읽기에 몰린 가운데 최근 전 세계적으로 중국 화웨이의 보안 논란이 일면서 최종 선택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미국은 일찌감치 보안 논란이 된 화웨이 장비를 ‘퇴출’하겠다는 선언을 했고 일본과 캐나다, 호주, 유럽의 주요 국가까지도 보안 문제를 이유로 화웨이 장비를 제외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내 통신 3사는 글로벌 시장의 이러한 움직임을 간파하고 있으며 국내 여론의 반발 움직임도 심상치 않아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4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국내 이동통신 3사는 이달 중 차세대 5G 핵심 장비업체를 선정할 계획이다. 중국의 화웨이를 비롯해 삼성전자, 노키아, 에릭슨 등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을 입증한 5G 장비업체를 후보군으로 삼고 있다.
이들은 5G 장비업체 선택 기준이 높은 기술력은 물론 저렴한 가격대를 초점에 맞추고 있다. 화웨이는 현재 전 세계 통신장비 시장에서 28%의 점유율로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경쟁사들보다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며 가성비가 탁월하다는 평가다.
중국 정부는 글로벌 5G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으로 화웨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이러한 정부 지원과 맞물리면서 화웨이는 단숨에 글로벌 5G 시장의 강자로 자리 잡았다.
이전 4G LTE 장비 도입 당시 SK텔레콤과 KT는 권역별로 삼성전자·에릭슨·노키아 장비를 도입해 사용했다. LG유플러스는 3개 업체에 화웨이까지 더하면서 4개 업체 장비를 사용했다.
업계에서는 최근의 보안 논란이 첨예해지고 있어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화웨이를 선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견해다. 다만 LG유플러스는 화웨이 장비 가격이 경쟁사 대비 30%가량이나 낮고 기존 LTE 장비와의 연동성을 고려해야하는 입장이므로 화웨이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LG유플러스의 행보에 우려의 목소리를 보내고 있다. 보안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에 LG유플러스가 리스크를 염두에 둔 선택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의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화웨이는 장비 제작을 위해 퀄컴, 인텔, 마이크론 등 미국계 주요 반도체 회사들로부터 부품을 조달하고 있다”며 “무역 제재가 현실화되면 화웨이가 수많은 부품의 공급망이 차단될 수 있고 단기간에 이를 대체하기 쉽지 않아 LG유플러스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화웨이의 보안 논란과 관련해 LG유플러스에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누리꾼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LG유플러스가 화웨이 선택을 고집한다면 타 통신사로 갈아타겠다는 반응이다.
각 국 정부가 보안 논란과 관련해 화웨이에 부정적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반대로 우리 정부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도 논란을 만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으로 한국 기업들은 물론 관광 산업이 큰 타격을 받은 선례가 있어 중국 정부의 또 다른 보복으로 이어질까 우리 정부가 전전긍긍하는 것은 아니냐는 목소리다.
한편 미국은 지난 2012년 화웨이의 장비가 스파이 활동에 악용될 수 있다는 의회 보고서에 이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공기관에 중국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지 말 것을 명령하는 ‘2019년 국방수권법’에 서명했다. 자국 통신사들에게는 중국산 5G 장비 도입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호주도 지난달 22일(현지시간) 공식 성명을 통해 “국가 주요 정보를 탈취할 가능성이 있는 공급업체의 5G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호주 정부는 국가 핵심기술을 보호할 임무가 있다”고 밝히는 등 우회적으로 화웨이 장비 도입 금지를 못 박았다.
이밖에 러시아 통신장비협회는 러시아 정부에 화웨이와 ZTE 통신장비의 수입을 규제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일본 정부도 보안 우려를 이유로 화웨이 장비에 대한 규제를 적극 검토하는 중이다. 캐나다도 미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화웨이 퇴출을 결정했다.
화웨이는 세계 각 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울상인 모습이다. 주요 선진국들 대다수가 퇴출에 힘을 모으는 중이기 때문에 개발도상국 등 신흥시장에 집중해야 하는 형편이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정부의 부정적 움직임이 없는데다 국민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사용자수를 보유하고 있어 화웨이 입장에선 꼭 잡아야 할 시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미국과 같은 강대국은 건들지 못하더라도 한국은 언제든 사드보복과 같이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을 것”이라며 “최근 사드보복이 풀리면서 숨통이 트인 마당에 우리 정부가 쉽사리 의견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국내 업체들도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