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C뉴스] 10.26과 12.12가 수습되고 1980년 새해가 밝았다.
최규하 대통령이 이끄는 과도 정부가 끝난 후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인가? 국민들은 민주화로 나아갈 거라는 기대 속에 ‘서울의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최규하 대통령은 긴급조치 9호를 해제했고 정치권과 대학가에서는 복권과 복직이 일어났다.
하지만 1980년 5월 ‘서울의 봄’은 차갑게 얼어붙는데. 짧은 기간이었지만 대한민국이 민주화로 가는 길을 꿈꾸었던 ‘서울의 봄’을 ‘역사저널 그날’에서 이야기해본다.
전두환의 K-공작 1) 언론을 포섭하라! K-공작계획
전두환과 신군부들은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 ‘K(King)-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첫 목표는 ‘언론 길들이기’ 이때! 전두환 앞에 나타나 해결책을 제시한 이는 기자 출신의 ‘허문도’. ‘언론을 장악해야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말로 전두환의 마음을 얻고 K-공작계획을 만든다. 언론인 탄압부터 언론사 통폐합까지 권력 찬탈을 위한 전두환의 가장 핵심적인 작업이었던 ‘K-공작계획’.
계획 뒷이야기부터 전두환이 국민을 설득한 방법까지! ‘K-공작계획’의 모든 것을 ‘역사저널 그날’에서 살펴본다.
전두환의 K-공작 2) 중앙정보부를 장악하라!
K(King)-프로젝트의 두 번째 목표는 중앙정보부장.
1980년 4월 14일. 전두환은 중앙정보부장 서리라는 직책으로 중앙정보부를 장악하게 된다. 마침내 권력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기 시작한 전두환! 차기 대권을 노리는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 3김과 당시 대통령 최규하는 전두환의 속내를 눈치채지 못했을까?
전두환과 신군부가 불려온 민주화의 위기상황을 막지 못한 씁쓸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역사저널 그날’에서 만나본다.
서울역회군 그리고 사라진 ‘서울의 봄’
1980년 5월 15일. 학생들은 계엄 철폐와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며 서울역 앞으로 모인다. 추산 인원만 약 10만여 명. 학생시위와 함께 정치권과 국회에서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다시 활발해지지만 이미 늦어버린 상황. 신군부는 5.17 전국계엄을 발표하며 대한민국의 봄을 다시 겨울로 돌려버렸다. ‘1980년 서울의 봄’이 대한민국에 전하는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2월 2일 화요일 밤 10시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돌아본다.
CBC뉴스ㅣCBCNEWS 이기호 기자 press@cbc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