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을 구체화하면서, 국책은행 노동조합이 공동 대응에 나섰다. 국토교통부와 국토연구원이 350여 개 기관의 이전 후보지를 검토 중이며, 이르면 다음 달 구체적인 윤곽이 나올 전망이다. 부산시는 지난 3일 전재수 시장 주재로 '공공기관 이전 추진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어 한국산업은행, IBK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금융 분야 기관을 유치 대상으로 선정했다. 대구시 역시 기업은행 본점 유치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지역 중소기업 및 대구혁신도시의 신용보증기금 등과의 연계를 강조하고 있다. 이외에도 경남, 충북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기업은행을 유치 대상으로 삼아 경쟁이 치열하다.
이전 계획이 가시화되자 국책은행 노조는 9개 지부가 참여하는 공동 대응 TF를 구성해 지역별 이전 후보와 지자체, 정치권의 움직임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산업은행, IBK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3대 국책은행 노조는 정책금융기관의 특수성을 들어 본점 이전이 업무 효율과 전문 인력 확보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산은은 산업·기업금융과 구조조정, 기은은 중소기업·소상공인 금융, 수은은 수출·대외금융을 각각 맡고 있어 정부나 기업, 금융회사와의 접근성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2023년 산은이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지정됐으나, 산업은행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본점이 서울에 남은 전례도 있다.
이처럼 지방이전 논의가 본격화된 가운데, 3대 국책은행 노조가 11일 오후 7시 서울 영등포구 산업은행 본점 옆 의사당대로에서 '국책은행 지방이전 저지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번 집회는 국책은행 노조가 공동으로 개최한 첫 대규모 행사로, 경찰 비공식 추산 약 2천 명이 참석했다. 현장에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 등도 함께했다. 참가자들은 '국책은행 뒤흔드는 졸속 이전 결사반대', '주소는 옮겨도 전문성은 못 옮긴다', '인재는 못 옮긴다, 국책은 못 흔든다' 등 문구가 적힌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본무대 앞 200m 구간을 가득 메웠다.
집회 현장에는 정장 차림의 퇴근길 직원부터 단체 티셔츠를 입은 노동자들까지 다양한 복장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국책은행 지방 이전이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한 '졸속 행정'이라고 비판하며, 국가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이전이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은행지부 이장희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대선 당시 약속했던 국책은행의 특수성, 서울 금융허브 조성, 1차 지방 이전의 부작용에 대한 과학적 검토 등이 무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수출입은행지부 정은주 위원장은 국책은행이 정부에 매년 2조 원이 넘는 배당을 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다며, 정책금융의 최전선에서 국가 위기의 안전판 역할을 하려면 반드시 서울에 존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은행의 한 대리급 조합원은 고용 불안으로 동료들이 떠나가는 상황을 언급하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같은 싸움을 반복해야 하는 현실을 토로했다. 수출입은행지부 강지성 부위원장은 금융은 신뢰와 네트워크가 핵심이라며, 50년간 쌓아온 해외 네트워크 자산이 본점 이전으로 하루아침에 따라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신혼인 기업은행 조합원은 주거와 가족, 미래 계획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며, 협의 없는 지방 이전 강행이 노동자의 삶을 파괴한다고 호소했다.
정치권 인사들도 집회에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은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국가가 금융 핵심 기능을 집적화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지역 경제 활성화는 국책은행 이전이 아니라 지방 기업에 적기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는 2만여 노동자와 가족 등 수십만 명의 삶이 걸린 사안임에도 정부가 노정 협의 없이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토부의 입장 변화와 용산의 함구령 등 일관성 없는 추진 방식에 대해 국회 정무위원회 차원에서 꼼꼼히 살피고 연대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집회 마지막에는 3개 지부 위원장들이 단상에 올라 '국책은행 기능마비', '지역발전 눈속임', '폭압적 강제이전' 등의 문구가 적힌 아크릴판을 망치로 깨뜨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어 결의문 낭독을 통해, 반도체와 AI 등 국가 미래 산업을 위한 정책금융 확대가 필요한 시점에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지방 이전은 금융 중심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국가 경제 전반에 부작용을 남길 것이라며 정부에 정책 방향 재검토를 촉구했다. 노조는 이번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정부의 향후 결정에 따라 총파업까지도 검토할 계획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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