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BC뉴스] 지난해 추석 연휴, 안방극장에 오랜만에 낯익은 얼굴이 등장했다. '광복 80주년 KBS 대기획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 조용필이 1997년 KBS 빅쇼 이후 28년 만에 KBS에서 선보인 단독 무대였다. 추석 당일 저녁 7시 20분 방송된 이 무대는 전국 시청률 15.7%를 기록하며 그해 추석 연휴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남겼다. 명절 예능이나 드라마도 아닌, 한 가수의 단독 콘서트 실황이 온 가족의 채널을 붙잡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존재감을 짐작하게 한다.
명절 방송이 유독 큰 울림을 남긴 데는 이유가 있다. 온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부모에게는 청춘의 기억을, 자녀에게는 익숙하지만 낯선 목소리를 동시에 소환했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마주한 무대에 발길을 멈춘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도 뒤따랐다. 남녀노소가 세대를 불문하고 같은 화면 앞에 머문 셈이다. 방송을 앞두고 여러 후배 가수들도 애정 어린 마음을 전했다. 아이유는 방송 당일 텔레비전 앞에서 조용필을 부르며 응원하겠다고 밝혔고, 국카스텐 하현우와 이승철 등은 그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무대에 서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가 아니라, 지금도 후배들이 진심으로 존경하는 현역이라는 사실이 이 짧은 인사들 속에 담겨 있었다.
조용필의 목소리는 한 시대의 배경음이었다.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재일교포의 고국 방문 소식과 맞물려 전국으로 퍼졌을 때, 그의 노래는 이산과 귀향이라는 시대의 정서를 대변했다. 정규 1집은 국내 최초 밀리언셀러 음반에 올랐고, 이후 내놓는 앨범마다 흥행하며 19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자리 잡았다.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고향을 떠나온 이들에게, 그의 노래는 떠나온 자리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 불러주는 목소리였다.
당시 일선 학교 현장의 반응도 이례적이었다. 음악 교사들 사이에서 교육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조용필은 고교를 순회하며 선생님과 전교생 앞에서 단독 공연을 이어가기도 했다. 대중가수가 학교 무대에 오르는 일이 흔치 않던 시절, 그의 음악은 세대와 계층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졌다. 이후 위대한 탄생을 결성해 다시 무대에 올랐고, 예술의전당에서는 대중가수 최초로 7년 연속 공연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9월 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는 그런 그의 궤적을 압축한 무대가 열렸다. 1만 8000여 명의 관객이 모인 이 공연에서 조용필은 3시간 동안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모나리자, 고추잠자리, 꿈, 바운스까지 28곡의 대표곡을 라이브로 소화했다. 티켓 오픈 3분 만에 전석이 매진됐고, 영국에서 9000km를 날아온 팬이 있었다는 뒷이야기도 전해졌다. 조용필은 당시 인터뷰에서 지금이 아니면 관객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무대에 섰다고 밝히며, 노래하며 나이 들어가는 삶에 대한 소회를 전해 뭉클함을 자아냈다.
이 공연은 이후 KBS 특집 방송으로 재구성되어 추석 안방을 찾았고, 방송 이후로는 공연장을 찾는 젊은 관객과 남성 관객의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부모님을 따라왔다가 조용필의 음악에 새롭게 빠져든 청년들이 속출했다는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하나의 무대가 세대 간 대화의 소재가 된 셈이다.
올해 1월에는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2025~2026 전국투어의 피날레 무대가 사흘간 이어졌다. 부산 BEXCO, 대구 EXCO, 인천 남동체육관,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를 거쳐 마지막으로 도착한 서울 공연이었다. 일흔여섯의 나이에도 조용필은 게스트 없이 홀로 무대를 채웠고, 공연 시간은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오랜 팬들은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공연장 주변을 가득 메웠고, 하루 종일 노래만 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소망 섞인 인사에 객석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객석의 풍경은 그의 음악이 품어온 시간의 폭을 그대로 보여준다. 부모 세대가 청춘의 기억을 안고 자녀와 손주를 데려오고, 그 자녀는 다시 다음 세대를 데려온다. 3대가 한자리에 모여 같은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은 흔치 않다. 조용필의 무대가 특별한 이유는 신곡의 화제성이 아니라, 세대를 건너 전해지는 정서의 연속성에 있다. 공연을 다녀온 팬들 사이에서는 부모님 손을 잡고 갔다가 눈시울이 붉어졌다는 후기, 어린 시절 부모님이 흥얼거리던 노래를 라이브로 처음 들으며 뭉클했다는 이야기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반세기 넘게 한결같이 무대를 지켜온 조용필의 모습에서, 시대를 초월한 가왕이라는 수식어의 무게가 새삼 확인된다. 남녀노소와 세대를 가리지 않고 그의 목소리 앞에 모이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그의 음악이 시대마다 그 시절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아 왔기 때문이며, 그 정서가 나이와 성별을 넘어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지난해 추석, 명절 저녁 온 가족이 모인 거실에서도, 올해 1월 KSPO돔을 가득 메운 다양한 얼굴들 앞에서도 여전히 유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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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C뉴스ㅣCBCNEWS 심우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