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BC뉴스] 베른에서 하루를 보낸 다음 날 아침, 이번 여정은 도심을 벗어나 스위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융프라우로 향한다. 그 전에 잠시 들른 곳은 무르텐이다. 베른에서 서쪽으로 멀지 않은 이 소도시는 중세 성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으로, 성 안뜰에는 옛 대포가 그대로 전시돼 있어 과거 방어 요새로서의 흔적을 짐작하게 한다. 성벽 위에 올라서면 무르텐 호수를 낀 구릉지대와 붉은 지붕이 이어진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스위스 중서부 특유의 완만한 언덕과 농경지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알프스로 향하기 전 여유로운 쉼표 같은 구간이다.

다시 길을 돌려 베른 시내를 통과하는 길목에는 스위스 건축의 화려함을 보여주는데, 맑은 여름 하늘과 대비되는 베이지톤 석재가 인상적이다. 이런 건축물들이 베른 구시가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은, 이 도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를 다시금 실감하게 한다.

베른을 떠나기 전 잠시 들른 곳은 쇼스할덴 공동묘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파울 클레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그의 묘비에는 생전에 남긴 문구가 새겨져 있다. 화려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베른이 배출한 예술가의 흔적을 조용히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라 산악 여정을 앞두고 들르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베른을 벗어나 산악열차 노선을 갈아타며 고도를 높이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도시의 회백색 건물들은 사라지고, 초록빛 목초지와 그 위를 유유히 거니는 갈색 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목에 달린 종소리가 들릴 듯한 거리에서 만난 소 떼는 알프스 목가적 풍경의 정석이라 할 만하다. 저 멀리로는 만년설을 인 융프라우 연봉이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전망대에 오르는 구간에서는 등산객과 여행객이 뒤섞여 산길을 오간다. 노란 안전선 너머로 펼쳐지는 계곡은 초록 능선과 잿빛 암봉이 겹겹이 이어지는데, 멀리 눈 덮인 봉우리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파노라마는 왜 이 지역이 알프스 하이킹의 성지로 불리는지 보여준다.

정상 부근으로 갈수록 날씨는 급변한다. 맑았던 하늘은 어느새 눈발이 흩날리는 흐린 날씨로 바뀌고, '융프라우요흐 유럽의 지붕'이라는 표지판 앞에는 두꺼운 옷을 입은 여행객들이 눈을 맞으며 기념 촬영을 한다. 한여름에 눈을 만나는 경험은 이곳이 해발 3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구름이 걷힌 자리로는 빙하가 만들어낸 웅장한 지형이 드러난다. 암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만년설과 그 아래 초록 초원이 맞닿은 경계는 계절이 빚어낸 대비를 그대로 보여준다. 하산길에 마주친 인공 호수는 빙하 융수 특유의 청록빛을 띠고 있어, 잿빛 암산과 초록 언덕 사이에서 유독 선명한 색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르텐의 고즈넉한 성곽 마을과 파울 클레의 묘지에서 시작해 베른 시내를 거쳐 융프라우 만년설까지, 스위스의 완전히 다른 얼굴들을 마주한 여정이었다. 다음 편에서는 융프라우 하산 이후 '구간'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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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C뉴스ㅣCBCNEWS 심우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