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기자]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는 일본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 작가 이가라시 다이가 농인 어머니의 삶을 취재해서 쓴 에세이다.
농인 부모의 언어인 수어를 충분히 익히지 못해 자라는 내내 외로웠던 아이가 성인이 되어 수어를 배우고 농인의 역사를 공부하며 어머니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는 여정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아무런 소통 수단 없이 고립되었던 어머니의 어린 시절과 부모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온 세상과 불화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포개어보며, 또한 다른 언어를 가진 존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가족과 이웃, 사회가 각자의 자리에서 했던 노력들을 알아가며 비로소 과거와 화해한다.
일본어와 한국어, 그리고 수어까지 고려해야 했던 작업 속에서 노수경 역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본지와 사계절출판사가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 역자 노수경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Q. 번역과 필사는 닮은 작업인 듯합니다. 한 문장씩 옮기며 작가의 모습, 성격, 말투 같은 것을 떠올려보셨을 것 같은데요. 번역가님이 상상했던 이가라시 다이 작가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최근 한겨레에서 진행한 줌(Zoom) 인터뷰에서 통역을 맡으시면서 실제로 작가님을 만나기도 하셨지요. 상상했던 모습과 비슷했나요?
줌 인터뷰 통역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을 꼭 만나고 싶었는데, 줌으로라도 만나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이길보라 감독님까지 만나게 되어 제 인생에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번역과 필사가 닮은 작업이라는 말씀, 생각해보니 정말 그러하네요! 저는 필사를 지독하게도 싫어했는데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다니, 인생이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번역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이가라시 다이 작가님의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신문에 나온 인터뷰 기사에서요. 번역하는 내내 작가님의 얼굴을 떠올리고, 제 머릿속에서 움직여가며 작업을 했기 때문에 저 혼자만의 내적 친밀도는 엄청나게 높았습니다. 실은 이 책이 참 신기하게 느껴져요. 작업을 하는 동안 마치 영화를 보며 그 이미지를 글로 옮기는 느낌이었거든요. 작가님 얼굴을 알았기에 망정이지 몰랐다면 아마 얼굴 없는 누군가가 계속해서 제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을 거예요. 그래서 인터뷰 통역을 할 때 저는 막 친한 척을 했는데, 어쩌면 작가님이 조금 불편하셨을지도 모르겠어요. 한국의 중년 여성에 대한 선입견이 생겼으면 어쩌지요. (웃음)
이 책에는 작가님이 어머니와 수어로 대화하는 장면과 그에 대한 작가님의 간단한 설명이 함께 나오는 부분이 많은데요, 그 설명 가운데 어머니와 수어로 이야기를 나눌 때 마치 그 대화 속 장면을 눈으로 직접 보는 듯했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그 부분을 읽고 저도 ‘아, 수어란 그런 것이구나’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 책을 번역하는 작업이 영화를 글로 옮기는 것 같았던 이유는 수어 대화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었을까요? 작업 내내 ‘책이 참 시각적이다, 영화 같다’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인터뷰를 함께한 한국의 코다 이길보라 감독님도 영화를 만드시는 분이더라고요.
앞서 일본 시각장애인의 에세이를 옮기는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누가 내 머릿속에 라디오를 틀어놓은 듯도 하고, 작가님을 실제로 만나서 만담이라도 한 것 같았거든요. 이 두 번역 작업을 나란히 놓고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에요. 딱히 상관관계가 없을 수도 있고, 그저 두 작가의 개성일 수도 있지만 번역하는 저에게는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Q. 이 책에는 수어 대화와 음성 일본어 대화가 함께 등장합니다. 수어로 나눈 대화라고는 해도 작가가 음성 일본어로 바꿔서 적은 것이지만요. 혹시 번역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음, 어려웠지만 쉬웠습니다! 수어에서 사용하는 말이나 표현이 음성 일본어와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뭐랄까, 두루뭉술하다고 표현하면 될까요?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같은 단어가 자꾸 반복되는 것 같기도 했고요. 정말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내용이 구체적으로 잘 전달되도록 번역하고 있나? 때로 그런 의심이 들곤 했어요.
사실 이건 저의 나쁜 습관이기도 한데요, 제가 일본어로 이해한 부분을 어떻게든 독자에게 다 전달하고 싶어 하는 편이에요. 제가 다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제가 옮긴 글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헤아리는 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데까지 밀고 나아가려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 제가 수어 대화를 옮기다 보니 뭔가 너무 동글동글, 몽글몽글 포근한 느낌만 전달하는 게 아닌가 싶은 거예요. ‘엄청 속상한 일이었을 텐데, 진짜 그냥 이렇게 표현하고 마는 건가? 실은 정말 심각한 내용인데, 내 일본어가 부족해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가?’ 등등 걱정이 많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머니와 어머니 가족들의 감정선이 제 예상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작가인 ‘다이’에게 감정 이입을 한 제 예상과 다른 부분이었겠지요. 그런 엇나가는 부분을 다 주석으로 달았다가, 다시 지웠다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돌아보면 제 주변에는 청각장애인이 전혀 없었어요. 책이나 미디어에서 접한 게 전부이지요. 그런 제가 작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들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그걸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사실 작가님은 저 같은 독자를 위해 작품 곳곳에 친절한 설명을 많이 마련해두셨어요. 농인과 수어의 역사, 문화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셨고요.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글에서는 날씨와 장소뿐만 아니라 인물의 외양, 분위기, 시대 배경, 인터뷰어의 심정까지 자세하게 기록하셨습니다. 분노, 공포, 답답함 등 자신의 감정에만 치우치지 않기 위해 객관적 거리를 두고 서술하려는 태도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고요.
Q. 번역 과정에서 울기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장애인들이 겪은 차별과 편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어머니의 빛나는 청춘 시절, 들리지 않아도 소통하고 사랑하며 살아온 인생이 따뜻하게 묘사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부분에서 우셨을지 궁금합니다.
아이고,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는 울보랍니다. 진짜 걸핏하면 울어서 어떤 부분이냐고 물으시면 굉장히 창피한데요. 장애인이 겪은 차별과 편견이 안타깝고 속상해서 운 것은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작가님이 통과해온 시간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여러 차례 어머니를 인터뷰하면서 어머니가 보냈던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이 있는, 그럼에도 아름다운 청춘 시절을 맞닥뜨렸잖아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어떤 감정이 들었을지, 자신의 외로웠던 학창 시절이 떠오르진 않았을지, 그 시절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을지 아니면 안타깝게 느껴졌을지……. 상처투성이로 자란 아들이 어머니에게 가서 닿는 데 걸린 세월이나 노력 같은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것이지요. 어머니 앞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을까. 끊임없이 끓어오르고 뒤섞이는 감정을 추스르며 어떻게 인터뷰를 했을까? 이런 종류의 감정 이입이랄까요?
사실 작가님은 ‘나는 글을 쓸 때건 인터뷰를 할 때건 아무 거리낌도 없었는데?’라고 하실지도 모르지만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울었냐고 하신다면, 제일 먼저 울었던 장면은 초반에 ‘다이’가 부모님 집에 가는 장면 있잖아요. 고향집 근처 역에 내려서 바다 냄새를 맡으며 해 저문 거리를 걸어 집으로 가는 부분이요. 저는 진짜 이 부분을 펑펑 울면서 번역했어요. 여기서 이랬다면 다른 데서는 얼마나 많이 울었을지 짐작하시겠죠?
저는 이 책을 본격적으로 번역하기 전에 작가님의 전작 두 권을 읽었어요. 그래서 작가님이 미야기에서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고 왜 집을 나갔는지, 그 뒤 도쿄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조금 알고 있었어요. 그런 상태에서 바다 냄새를 맡으며 한적한 고향집 길(이곳은 동일본대지진 때 피해를 입은 곳이기도 합니다)을 걷는다는 문장을 읽으니 가슴이 찢어지는 거예요. 제 고향이 바닷가도 아니고 학창 시절이 작가님과 비슷했던 것도 아닌데, 마치 제가 그 짠 냄새를 맡으며 홀로 캄캄한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어머니가 즐거웠던 학창 시절을 이야기할 때, 농학교에서 의지했던 오누마 선생님 이야기를 할 때, 또 인터뷰에 응해준 오누마 선생님이 작가님을 위로할 때도 많이 울었습니다.
Q. 농인 부모와 내밀한 소통을 하지 못한 채 성장한 저자가 30대 후반에 이르러 다시 수어를 배우고 어머니의 삶, 농인의 역사를 알아가는 여정이 매우 감동적이었어요.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 묻는다면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새로운 날들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자의 이런 결심, 용기를 보며 번역가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그러니까요!!!! 진짜 ‘이론’으로는 누구나 다 아는 거잖아요. 이 핑계 저 핑계로 지금 당장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어떤 종류의 게으름이랄까요, 타성에 젖은 삶의 방식이 우리, 아니 저를 이렇게 비겁한 인간으로 남겨두었구나 싶었어요. 다른 한편 작가님으로 하여금 저렇게 용기를 내게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쉬운 결론 같긴 하지만 부모님의 사랑이 아닐까. 말로 전달하지 않아도 결국 가슴에 가닿고 머리로도 이해되고 온몸을 움직이게 하는 사랑이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작가님이 부럽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저와 부모님의 관계도 돌아보게 되었고, 저와 아이들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 이라고 쓰고 싶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와 정치적으로 견해를 달리하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내가 상처받는 것이 싫어서 소통을 거부했던 것은 아닌가, 진실함으로, 관심과 사랑으로 대하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기도 해요.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애초에 나에게 사랑을 주었으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사랑을 주었을 텐데, 라는 식으로 부모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곤 하지요. 사실 저도 답을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작가님 참 대단하다, 그 용기를 본받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답을 알아도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잖아요. 저 같은 약하고 비겁한 인간은 매번 실패하지만, 작가님은 꼭 그 길 꿋꿋이 가시라고 멀리서라도 응원하고 싶어요. 그 모습을 보다 보면, 어쩌면 나도 몇 번 더 실패를 무릅쓰고라도 행동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고요.
Q. 저자가 어머니의 삶을 알아가던 끝에 마주한 것은 우생보호법이었습니다. 장애나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강제 불임 수술 혹은 임신 중지 수술을 실시하던 법이었지요. 우생보호법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지만, 장애아의 출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산전 진단 기술이 점점 더 발전하고 있는 걸 보면 우생 사상은 여전히 강력하게 살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장애아를 낳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은 사회 현실을 생각하면, 산전 진단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곤란한 질문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 혹시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생물학에서 각 개체의 형질 다양성을 조사하고 기록한 자료들을 보면, 인간 외의 생물들(유전자 변형이 아닌 경우에 한함)은 거대한 다양성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인간 사회만 특정한 형태를 ‘정상’이라고 보고 그 좁은 범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비정상’이라 낙인찍곤 하지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강조되면서 그런 모습이 많이 줄어들었다고들 하지만, 사실상 우생 사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산전 검사, 성형 수술, 선망받는 직업이나 패션, 학벌 등 우리는 누가 정했는지 알 수 없는 ‘정상성’의 좁은 거푸집에 몸을 맞추기 위해 모두가 발버둥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자신이 정상성 범주에 들어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그 거푸집에 눌려 속으로는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다 보니 나보다 정상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보면 안도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정상성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스스로 단속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산전 검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내 안에도 ‘비정상성’이 있지 않을까 의심한다는 뜻 아닐까요? 우리 스스로의 ‘비정상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요. 산전 검사를 하는 분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 행위 자체가 나에게도 비정상성이 있음을 실은 인정하는 것이므로, 의외로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게 저의 ‘비정상적인 희망 회로’입니다.
저는 일본에서 아이들을 낳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보다는 그런 우려나 걱정이 덜해서 임신 기간 동안 몸과 마음이 편했어요. 기형 검사는 노산이라고 진단받았던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만 딱 한 번 했습니다. 정밀 초음파를 사용해서 손가락, 발가락 개수를 세고, 심장 모양을 보고, 목 투명대의 두께를 재는 것이었는데요. 초음파를 봐주던 의사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수치가 정상 범위가 아니면 어떡하실 건데요? 어차피 내 배에 있는 내 자식인데 낳을 것 아닌가요? 다른 방법이 없지 않나요? 어떻게 다른 검사를 더 해보시겠어요?” 듣고 보니 정말 그러해서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낳았어요. 의외로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척들이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그들이 나쁜 마음을 가져서가 아니잖아요. 그런 일이 일어나기만 하면 득달같이 달려와 차별할 준비가 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차별이나 편견이 잘못된 것임을 아니까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측면에서 우생보호법은 매우 잔인한 법이지만, 어떻게 보면 인간이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생겨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과거의 일본인이 특별히 나빠서 생겨난 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약하고 두려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라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요.
언젠가는 제가 청각장애나 시각장애 당사자가 되리라 생각해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자신의 일이고, 가족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쉽지 않을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자신이 당사자가 되었을 때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겠지요. 지금 당장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 이런 좋은 책을 읽고 생각해보는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Q. 강상중의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브래디 미카코의 '아이들의 계급투쟁' 등 사계절출판사와 다양한 책을 함께 만들어오셨습니다. 앞의 작업이 뒤의 작업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요? 혹은 이 작업들 사이에서 연속성을 느끼시나요?
물론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가장 앞에 서서 느끼고, 시대와 호흡하는 책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계절출판사. 그 물살 안에 제가 발 담그고 손 담그게 해주셔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 인터뷰는 CBC뉴스와 사계절출판사가 공동으로 진행합니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존댓말로 인터뷰 기사를 작성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국내외 주요 재테크 정보 'CBC뉴스 돈지뢰'에서 만나보세요
▮ CBC뉴스ㅣCBCNEWS 김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