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BC뉴스] 방탄소년단이 뉴욕 유엔본부 연단에 처음 올라선 것은 2018년 9월이었다.
유니세프의 청소년 의제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 행사에서 리더 RM이 7분간 영어로 발언을 이어갔고, 이 장면은 전 세계에 공개됐다. 이후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향해 특별 영상 메시지를 전했고, 2021년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문화특사 자격으로 세 번째 유엔 무대에 섰다.
세 차례의 등장을 관통하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왜 국가 원수도, 외교관도 아닌 아이돌 그룹이 국제기구의 가장 상징적인 연단에 반복해서 초대받았는가라는 물음이다.
전통적인 외교 개념에서 국제무대의 발언권은 국가와 그 대리인에게 귀속된다. 조약을 맺고 결의안을 채택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정부와 국제기구이며, 민간인이나 문화적 아이콘은 그 과정의 관찰자에 머무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의 유엔 연설은 이 구도를 뒤집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이들이 전달한 메시지에는 조약문이나 정책 제안이 담기지 않았다. 대신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라는 개인적 서사, 코로나 시기 청년들에게 건네는 위로, 지속가능발전목표에 대한 공감의 언어가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그 파급력은 웬만한 정부 성명보다 넓고 깊었다.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개념이 이른바 소프트 파워, 그리고 공공외교라는 틀이다. 조지프 나이가 제시한 소프트 파워 이론은 강제나 대가 없이 매력과 공감으로 타국의 마음을 얻는 힘을 국가 경쟁력의 한 축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힘의 발신자가 국가에서 개인과 기업, 플랫폼으로 확산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방탄소년단은 국가가 설계한 홍보 전략의 도구가 아니라, 이미 독자적으로 수억 명의 글로벌 팬덤을 형성한 이후에 국가와 국제기구가 그 영향력에 올라탄 사례에 가깝다. 정부가 스타를 활용한 것이 아니라, 스타의 영향력이 국가와 국제기구를 유엔 연단으로 이끈 것이다.
이러한 역전은 디지털 공론장의 구조와 맞물려 있다. 아미로 불리는 팬덤은 국경과 언어를 넘어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번역하고 확산시키는 자생적 네트워크로 작동한다. 전통적 외교가 국가 간 채널과 언론 보도를 거쳐 메시지를 전파했다면, 이 네트워크는 알고리즘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부의 개입 없이도 메시지를 수십 개 언어로 즉시 퍼뜨린다.
유엔이 청년 의제를 세계에 알리고 싶을 때, 어떤 국가의 외교 채널보다 이 팬덤 네트워크가 더 빠르고 더 넓은 도달률을 갖는다는 현실적 판단이 있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여기서 21세기 외교의 주인공이 국가만이 아니라는 명제가 성립한다. 다국적기업, 국제 NGO, 종교 지도자, 유명인, 그리고 초국적 팬덤 같은 비국가 행위자들이 국제 의제 설정과 여론 형성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흐름은 이미 여러 학자들이 네트워크 외교, 혹은 다중이해관계자 외교라는 이름으로 논의해온 주제다.
방탄소년단의 유엔 연설은 이 흐름을 대중적으로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장면 중 하나였을 뿐, 그 자체로 새로운 발명은 아니다. 다만 케이팝이라는 문화 산업이 특정 국가의 국경 안에서 소비되는 콘텐츠를 넘어, 초국적 공론장을 형성하는 하나의 제도적 채널로 자리잡았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은 각별하다.

물론 이 현상을 무비판적으로 낭만화할 필요는 없다. 비국가 행위자의 영향력 확대는 책임성과 대표성의 공백이라는 문제를 함께 낳는다.
국가는 선거와 헌법, 국제법이라는 최소한의 책임 구조 안에서 발언하지만, 팬덤과 셀러브리티의 영향력은 그러한 제도적 장치 바깥에서 작동한다. 누구도 이들에게 국제 의제를 대변할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 영향력이 특정 기획사와 산업의 상업적 이해와 완전히 분리되기 어렵다는 점은 이 새로운 외교 지형이 안고 있는 취약점이다.
그럼에도 방탄소년단의 유엔 무대가 남긴 함의는 분명하다. 국제 의제가 확산되고 공감을 얻는 경로가 더 이상 정부와 정부 사이의 직선적 채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앞으로의 국제 담론에서 누가 말하는가보다 누구의 말이 얼마나 멀리, 얼마나 빠르게 가닿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가 여전히 조약과 결의안을 만드는 유일한 주체라 해도, 그 메시지가 세계 시민의 마음에 도달하는 마지막 구간은 이미 국가의 손을 떠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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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C뉴스ㅣCBCNEWS 심우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