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C뉴스] 추위 속에서 더욱 뜨거워지는 바다. 겨울을 기다려온 어민들에게 찾아온 진객들.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먹거리들로 풍성해진 남해의 밥상을 맛본다.
남해는 만물이 얼어붙는 겨울마저 풍요롭다. 특히 사계절 내내 청정함과 수려함을 자랑하는 통영과 거제 인근의 다도해는 겨울이면 찾아오는 특별한 손님 덕에 활력이 넘친다는데. 통영 바다의 풍부한 영양물을 머금고 살 오른 굴부터 알래스카 연안에서부터 먼 길을 찾아오는 입 큰 손님 대구와 그에 비견하는 겨울철 대표 생선 아귀까지. 제철 맞은 어물들이 바로 어민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녹여주는 귀한 손님들이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진객을 맞이해 어느 때보다 풍성한 남해의 겨울 밥상을 찾아 떠난다.
입 큰 손님 대구가 준 뜨끈한 겨울. –경상남도 거제시
살풍경한 겨울, 다른 곳보다 유독 활기를 띠는 어항이 있다. 찬바람 사이로 어민들이 호객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거제시 북부의 외포항이다. 그들이 소리 높여 자랑하는 것은 다름 아닌 대구. 외포항은 산란기 대구가 자리 잡는 남해 최대 집산지로 전국 대구 출하량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겨울에만 찾아오는 입 큰 손님을 만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바다로 나가는 엄대삼 선장. 외포 토박이인 그는 한평생 어부로 산 아버지를 돕기 시작하며 대구 잡는 어부가 되었다는데. 어부가 된 대삼 씨를 따라 덩달아 바빠진 것은 아내 유정온 씨. 생선 손질도 서툴던 정온 씨는 남편이 잡아 온 대구를 직접 판매하기 위해 외포항에 자리를 폈다.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가며 배우기 시작해, 이젠 제법 능숙한 솜씨로 대구를 손질하는 정온 씨.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는 정온 씨는 최근 시어머니에게 아가미젓 담그는 비법을 전수받는 중이라는데. 막 잡아 싱싱한 대구 아가미를 소금에 절였다가 조물조물 무쳐내는 아가미젓은 남편 엄선장이 가장 좋아하는 엄마표 반찬이란다. 장사하랴 공부하랴 온종일 고생한 아내를 위해 엄선장이 팔을 걷어붙였다. 뜨끈하고 부드러운 대구탕은 묵묵한 남편이 아내를 응원하는 방법이다. 한편, 겨울이 찾아온 외포항의 특별한 풍경이 또 있다는데. 배 가득 알을 품고 바닷바람에 말라가는 약대구가 그 주인공이다. 전통 방식인 소금 대신 액젓과 약재로 염장한 대구알을 흰죽에 곁들이면 거제의 오랜 보양식 약대구죽 완성이다. 대구가 있어 따뜻한 외포항의 겨울을 만나본다.
당신은 나의 꿀, 나의 달큼한 굴. –경상남도 통영시
찬 바람 불기 시작하는 11월부터 통영의 바다는 점차 뜨거워진다. 겨울이 되어야 농익는 통영의 대표 먹거리 굴을 채취하기 위한 어민들의 열기 때문이다. 전국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통영 굴은 어민들에게 1년을 책임지는 바다 농사나 다름없다. 2대째 굴 양식업을 하는 지용주 씨도 겨울을 기다려 온 것은 마찬가지. 하루에 약 2톤 정도의 굴을 수확하며 농번기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는데. 채취된 굴은 뭍으로 나오는 즉시 굴을 까는 작업장인 박신장으로 옮겨진다. 기계로는 할 수 없는 굴 까기 작업을 도맡는 것은 사람의 손. 수십 년 경력의 통영 ‘굴 아지매’들의 손길 끝에 굴은 보드라운 속살을 드러낸다. 하루 열두 시간을 서서 작업하는 아낙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것은 용주 씨의 아내 조행이 씨. 굴 수확 철에만 먹을 수 있다는 굴시락국은 고단한 작업을 잊게 해주는 꿀맛 같은 일밥이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하는 굴 농부 용주 씨의 하루는 박신장을 정리하는 오후가 되어야 끝이 난다.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과지만,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면 감사한 마음뿐이라는데. IMF 당시 사업에 실패하며 고비를 겪었던 용주 씨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아내 행이 씨의 애정 어린 지지덕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곁을 지켜주는 아내를 위해 용주 씨가 특별한 굴 요리를 준비했다. 훈제오리를 구워 기름을 낸 후 거기에 굴과 김치를 넣어 노릇하게 구워내는, 일명 김치굴오리삼합이다. 뽀얀 굴로 전하는 부부의 사랑을 맛본다.
야소골 부부의 남해 품은 한 상.– 경상남도 통영시
풍부한 산물과 문화적 유산이 가득한 통영은 예로부터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도시였다, 박준우, 김은하 부부 역시 5년 전 통영에 정착한 귀촌인들이다. 통영의 수많은 명당 중 그들이 둥지를 튼 곳은 남해를 마당 삼고 미륵산을 병풍 삼은 야소골. 품처럼 아늑한 그곳에서 두 사람은 자연을 만끽하며 새로운 삶을 즐기고 있다. 서울에서 건축사로 활동하던 준우 씨는 술 빚기에 재미를 붙였다. 누룩과 쌀, 물 말고는 무엇도 첨가하지 않은 술이 발효를 거치면 천연 탄산을 만들어낸다는데. 설명하는 준우 씨의 표정에 즐거운 기색이 가득하다.
남편 준우 씨가 만든 막걸리는 아내 은하 씨에게 훌륭한 음식 재료다. 종초에 막걸리를 부어 숙성시키면 해산물과 찰떡궁합 자랑하는 막걸리식초가 된다는데. 제철 맞은 아귀 회에 맛간장과 막걸리식초를 넣고 버무리면 군침 도는 아귀회초무침 완성. 입맛 까다로운 남편에게 손맛을 맞추다 보니 어느새 음식솜씨가 늘었다는 은하 씨. 창작요리는 은하 씨의 주특기다. 통영 앞바다에서 잡힌 옥돔을 두툼하게 포 뜬 후 뜨거운 기름을 끼얹으면 옥돔 비늘이 꽃처럼 피어나며 바삭한 식감으로 변한다는데. 속살까지 정성껏 익혀낸 옥돔비늘구이는 손님맞이를 위해 테이블로 향한다. 은하 씨의 손맛을 아는 지인들이 선물과 함께 야소골을 찾아온 것. 좋은 사람과 맛깔난 음식이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는 한 상으로 입안 가득 남해를 품는다.
배우 최불암이 진행하는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40분에 방송된다.
▶한번에 끝 - 단박제보
▶비디오 글로 만드는 '비글톡'
CBC뉴스ㅣCBCNEWS 박은철 기자 press@cbc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