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BC뉴스] 베른과 융프라우를 거친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스위스 남서부로 이동해 또 다른 알프스의 얼굴을 마주하고, 이어 국경을 넘어 독일과 프랑스까지 발걸음을 옮기는 구간이 이어진다. 같은 스위스라도 지역마다 산세와 마을의 색이 확연히 달라지고, 국경을 하나씩 넘을 때마다 건축양식과 도시의 표정도 함께 바뀐다.
그 첫 도착지는 체르마트다.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지붕들 사이로 솟은 마터호른이 시선을 붙잡는다. 뾰족하게 깎인 삼각형 봉우리는 사진이나 초콜릿 포장지에서 무수히 봐온 그 모습 그대로인데, 실제로 마주하면 스케일이 다르다.
해발 4478미터에 이르는 이 산은 알프스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봉우리로 꼽히는데, 눈이 그리 많지 않은 여름에도 정상 부근에는 만년설과 빙하가 그대로 남아 있어 초록빛 산자락과 뚜렷한 색의 대비를 이룬다. 마을을 감싼 침엽수림과 그 위로 만년설을 얹은 암봉이 겹쳐지는 풍경은, 왜 이 산이 스위스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는지 실감하게 한다.
체르마트는 내연기관 차량 진입이 금지된 마을이라 전기차와 소형 열차만 오가는데, 그 덕에 산과 마을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풍경이 고스란히 유지된다. 목조 샬레 양식의 건물들이 산자락을 따라 촘촘히 들어서 있고, 마을 어디에서든 시선을 들면 마터호른이 눈에 들어오는 구조라, 걷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산을 마주하게 되는 마을이다.
체르마트를 오가는 길목에서는 빙하특급, 글레이셔 익스프레스와 마주치게 된다. 생모리츠와 다보스, 체르마트를 잇는 이 열차는 붉은 차체에 흰 줄무늬가 선명해 플랫폼에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눈에 띈다. 이 열차는 알프스를 관통하는 노선 중에서도 손꼽히는 파노라마 열차로, 정차한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산악 철도 특유의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레만 호수 방면으로 향하는 길에는 시옹성이 자리한다. 호수 위 바위섬에 거의 천 년째 서 있는 이 성은 해자에 둘러싸인 모습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스위스를 벗어나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넘어가면 풍경의 색이 완전히 바뀐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로, 일부는 전쟁과 화재로 파괴된 채 폐허로 남아 있고 일부는 정교한 조각 장식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무너진 벽체와 온전한 파사드가 나란히 붙어 있는 대비는 이 성이 겪은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성벽을 가까이서 올려다보면 인물상과 문장 장식이 켜켜이 쌓여 있어, 당시 팔츠 선제후가 이곳에 쏟았던 위세를 짐작하게 한다. 언덕 위에 자리한 성에서는 네카어강을 따라 펼쳐진 하이델베르크 시가지와 고성 특유의 붉은 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도시답게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지금도 학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넘어가면 마주하는 것은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이다. 붉은빛 사암으로 쌓아 올린 고딕 양식 대성당은 정면의 거대한 장미창 두 개가 특히 인상적인데, 그 아래로는 천문시계가 자리해 시각과 요일, 별자리까지 함께 표시한다.
첨탑 하나만 완성된 비대칭 구조 역시 이 성당의 특징인데, 원래 계획된 두 개의 첨탑 중 하나만 세워진 채로 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히려 독특한 실루엣을 만들어낸다. 광장 바닥에서 올려다보면 건물의 높이가 실감 나게 다가오고, 정교하게 조각된 성인상과 부조가 정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 한참을 올려다보게 된다.
알자스로렌 지역은 독일과 프랑스 국경을 오가며 역사적으로 소속이 바뀌어온 곳인 만큼, 건축물 곳곳에서 두 나라 양식이 뒤섞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목조 뼈대가 그대로 드러난 전통 가옥과 프랑스식 광장이 한 골목 안에 공존하는 모습도 이 지역만의 정취다.
다시 스위스로 돌아와 도착한 곳은 루체른이다. 루체른 호수와 로이스강이 만나는 자리에 놓인 카펠교는 목조 지붕을 얹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중 하나로, 다리 난간을 따라 만발한 꽃 장식이 계절감을 더한다. 다리 내부 천장에는 스위스 역사와 수호성인을 그린 그림들이 이어져 있어, 걸어서 건너는 동안 자연스럽게 도시의 옛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다리 옆으로 솟은 팔각형 수탑과 그 뒤로 펼쳐지는 피어투스산의 실루엣, 청록빛 호수까지 어우러지는 풍경은 루체른이 스위스 도시 중에서도 손꼽히는 미항으로 불리는 이유를 보여준다.

카펠교에서 멀지 않은 암벽에는 빈사의 사자상이 새겨져 있다. 프랑스혁명 당시인 1792년 튈르리 궁전을 지키다 전멸한 700여 명의 스위스 근위대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조각으로, 화살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방패를 감싸고 있는 사자의 모습이 처연하다.
덴마크 조각가 베르텔 토르발센이 설계하고 석공 루카스 아호른이 사암 암벽에 직접 조각했는데,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이 조각상을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감동적인 작품이라 평하기도 했다. 화려한 도심 풍경과는 결이 다른, 루체른이 품은 조용한 추모의 공간이다.
마터호른에서 시작해 레만 호수의 시옹성, 하이델베르크의 붉은 고성, 스트라스부르의 고딕 대성당을 거쳐 루체른의 카펠교와 빈사의 사자상까지, 국경을 넘나들며 알프스의 웅장함과 중세 유럽의 정취, 그리고 스위스 호반 도시의 여유로움을 차례로 마주한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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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C뉴스ㅣCBCNEWS 심우일 기자





